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 전투 (문단 편집) ==== 26연대의 분투와 철수 ==== 사단의 좌일선인 26연대는 7월 13일 저녁에 좌인접 9사단의 3대대(좌일선 대대) 진지를 인계한 후 주저항선 보강을 위해 부대 재배치를 하다 중공군의 공세를 받았는데 이때가 13일 오후 9시였다. [[파일:34214 (3).png]] 26연대 3대대 진지 교대 상황도 13일 오후 9시, 제26연대 1대대는 약 1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이 나타나 서둘러 포격을 실시하였고 그들을 모두 격퇴시켰으나 1시간뒤에 2개 대대규모로 증강되더니 각 중대 진지를 1개 중대로부터 1개 대대에 이르는 병력으로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대대는 연대급 병력을 맞이해 처절한 혈투를 벌이게 되었고 결국 철수 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는 끝까지 분투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후 11시가 되자 예상했던 대로 대대의 주저항선은 중공군에게 뚫려버리고 말았고[* 그리고 1대대 우단부에 배치된 3중대의 전차들마저 3대중 1대가 격파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연대는 서둘러 좌일선 대대 진지를 좌인접 사단에 인계하고, 1대대 우반부를 인수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3대대장을 따로 불러 진지 교대를 중지하고 1대대를 서둘러 증원하라는 명령을 지시한 다음 예비대인 2대대를 1대대로 증원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이들 양개 대대는 가는 도중 중공군과 조우해 격돌하여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였고 비가 엄청 내리는 폭우속에 결국 분산되어 남대천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전투로 2대대와 3대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 잔존병력이 겨우 100여명 정도로 줄게 되었고 중대장이 3일동안 실종되거나 소대장이 부상을 입어 겨우 빠져나오는등 사실상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 한편 1대대의 상황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승산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당시 1대대 주저항선에 배치된 4개 중대는 연대의 지원이 실패하면서 고립상태에 빠졌고 그나마 남아있는것 조차 진내사격이 전부로 사실상 전멸직전에 몰려있었다. 이후 중공군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해 좌단에 배치된 1중대 전초로 나가 있는 황신수 소위가 이끄는 2소대를 우회하여 주저항선을 공격하였고 2소대를 완전히 포위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2소대는 소대장을 포함한 전병력이 호속으로 들어가 저항했기 때문에 탈출하지 않았으며 결국 호가 차례차례 파괴 당한 끝에 소대원 전원이 전사하게 된다. 한편 1중대의 우측에 있던 3중대는 오전 4시경에 대대OP로 몰려온 중공군들을 상대로 맞서 싸웠으나 중공군이 대대OP 호 속으로 수류탄 2발을 던졌기 때문에[* 화기 중대장 이덕로 대위가 전사하고 미군 관측반원 전원이 부상을 입음.] 3중대는 서둘러 주저항선을 포기하고 남대천 남안으로 철수한다. 그리고 3중대 우측방에 있는 연대의 수색중대도 중공군의 공격를 받아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그 결과 중대장 조한길 대위가 전사하고 중대원 158명중 7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중대는 전멸 직전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중대는 철수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남대천 서안에 집결하였다. 끝으로 맨 우단에 배치된 2중대또한 중공군과 조우해 중대장이 부상을 입고 소대장이 전사하는등 많은 병력 손실을 입었지만 남대천 너머로 철수하는데에는 성공한다. 한편 연대에 배속되어 남대천 남안의 제2선으로 배치된 사단의 수색중대와 기갑연대 수색중대는 일선대대와 역습대대의 철수를 엄호한 다음 오전 6시에 2km 남쪽 462고지-노동 선으로 철수한 일선대대를 엄호하여 그 후방으로 철수하였다. 여기서 1연대를 증원하러 간 육근수 대령이 이끄는 기갑연대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연대장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14일 새벽 12:50분에 사단 사령부 우측방에 있는(1.2km) 연대CP로 집결한 다음 제2대대를 사단에서 지원된 22대의 차량에 태워 1연대 2대대CP로 보냈다. 이때 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본대보다 한발 앞서 1연대CP로 간 상태였고 연대장 최세인 대령과 역습부대 투입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그러나 이 협의에서 1연대장 최세인 대령은 정면 공격을 주장하였다. 이에 기갑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중공군의 남진 대열의 우측방 공격을 주장했다. 양측간의 의견출돌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던 도중, 기갑연대 제2대대가 육근수 대령의 지시대로 중공군의 공격 대열을 우측방을 공격할 위치를 잡기 위해 우인접 사단 지역내에 있는 월봉리 쪽으로 계속 이동하였다. 하지만 수도사단의 부사단장인 임익순 대령이 1연대CP에 도착하면서 반격계획은 연대장 최세인 대령에게 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기갑연대의 제2대대는 1연대의 지침에 따라 차량을 돌려 철수하게 돠었다. 이후 오전 3시 30분경, 2대대는 177A도로에서 연대CP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고 1연대CP로 이어진 주보급로에 도착한다.. 그러나 2대대가 행군해 가고 있는 이 도로는 '''바로 중공군 대부대가 6열 종대로 남하하고 있는 도로였다. 즉 중공군은 이 도로를 따라 남하하고 있었고 대대는 그 위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기갑연대장 육근수 대령은 급히 연대CP를 떠나 이천동으로 달려가 먼저 도착해 있는 8중대장을 만난 뒤, 중대가 선정한 진지를 정찰하라고 지시하고 후속 중대의 도착을 기다리도록 지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